최근 전세사기 피해가 늘어나면서 많은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임차권등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차권등기만으로는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수 없으므로, 임차권등기만을 믿고 방치하였다가는 자칫 보증금 반환청구권을 잃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소멸시효와 관련된 대법원 판례와 보증금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I. 대상판결(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6629 판결)의 쟁점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 임차인이 이사를 가더라도 임차권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진행하는 절차입니다. 따라서 임차권등기를 한 임차인을 ‘권리 위에 잠자는 자’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민법상 소멸시효 중단 사유는 청구, 압류, 가압류, 가처분, 채무승인으로 한정됩니다(민법 제168조). 이에 따라 대상판결에서는 임차권등기를 한 경우에도 보증금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되는지가 쟁점이 되었고, 대법원은 임차권등기가 보증금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중단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판시하였습니다.
민법 | 제168조(소멸시효의 중단사유) 소멸시효는 다음 각호의 사유로 인하여 중단된다. 1. 청구 2.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 3. 승인 |
II. 대상판결의 사실관계
사실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도-1] 2017다226629 판결 사실관계 도해

<사실관계> ① 원고와 망 A는 2002년 8월 15일, ⓧ 건물 2층 부분에 대해 보증금 1,800만 원, 임대차 기간 2002년 8월 18일부터 2004년 8월 17일까지로 정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② 임대차 기간 만료 후, 원고는 망 A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반환받지 못하였습니다. ③ 망 A는 2005년 2월 22일 사망하였고, 그의 상속인들은 망 A의 재산상 권리와 의무를 한정승인하였습니다. ④ 원고는 2005년 6월 28일, ⓧ 건물 2층 부분에 대해 주택임차권등기를 마쳤습니다. ⑤ 망 A의 배우자인 망 B는 2008년 3월 22일 사망하였고, 그의 자녀들이 망 B의 재산을 상속하였습니다. ⑥ 원고는 2016년 3월 18일, 피고 1, 2, 3을 상대로 보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III. 대상판결의 분석 및 평가
대상 판결에서 임대차계약은 2004년 8월 17일로 종료되었으므로, 임차인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권은 그 시점부터 원칙적으로 소멸시효가 진행되며, 소멸시효 기간은 민사채권으로서 10년이 적용됩니다(만약 임대인이 임대사업자인 경우에는 상사채권으로서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2004. 8. 17.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2016. 3. 18.에 피고들을 상대로 보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따라서 소멸시효 중단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원고는 패소 판결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원고는 소멸시효 중단 사유로 두 가지를 주장하였습니다. 1) 2005. 6. 28.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라 임차권등기를 마쳤으므로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는 주장, 2)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목적물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데, 자신의 누나를 통해 간접점유를 하였으므로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는 주장.
원심(고등법원)은 첫 번째 주장에 대해 임차권등기가 소멸시효 중단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들어 배척하였으며, 두 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간접점유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역시 원심과 마찬가지로 원고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며, 소멸시효 중단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단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민법 제168조 제1호에서 규정한 청구는 재판상 청구를 의미하며, 임차권등기는 민법이 정한 소멸시효 중단 사유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임차권등기는 담보적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담보물권이 설정된 경우에도 소멸시효가 중단되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임차권등기를 소멸시효 중단 사유로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권등기명령의 신청에 대한 재판절차 및 집행과 관련하여 민사집행법상 가압류 절차를 일부 준용하고 있으나(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3항), 이는 절차적인 측면에 국한된 것일 뿐 실체법적으로 소멸시효 중단을 인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임차권등기를 소멸시효 중단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의 판단은 법리적으로 합당하며, 민법 및 관련 법령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6629 판결 |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에서 정한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는 특정 목적물에 대한 구체적 집행행위나 보전처분의 실행을 내용으로 하는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과 달리 어디까지나 주택임차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취득하거나 이미 취득한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담보적 기능을 주목적으로 한다. 비록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임차권등기명령의 신청에 대한 재판절차와 임차권등기명령의 집행 등에 관하여 민사집행법상 가압류에 관한 절차규정을 일부 준용하고 있지만, 이는 일방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심리·결정한 다음 등기를 촉탁하는 일련의 절차가 서로 비슷한 데서 비롯된 것일 뿐 이를 이유로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가 본래의 담보적 기능을 넘어서 채무자의 일반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보전하기 위한 처분의 성질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에는 민법 제168조 제2호에서 정하는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
한편, 대법원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대차에서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동시이행항변권을 근거로 임차목적물을 계속 점유하고 있는 경우,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으므로(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44224, 2016다244231 판결), 만약 원고의 간접점유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원고는 승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44224, 2016다244231 판결 | 임대차가 종료함에 따라 발생한 임차인의 목적물반환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동시이행항변권을 근거로 임차목적물을 계속 점유하는 것은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반환채권에 기초한 권능을 행사한 것으로서 보증금을 반환받으려는 계속적인 권리행사의 모습이 분명하게 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임대차 종료 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목적물을 점유하는 경우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하여 직접적인 이행청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권리의 불행사라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과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임대인의 목적물인도청구권은 소유권 등 물권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임대인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지와 관계없이 권리가 시효로 소멸하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만일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목적물을 점유하여 적극적인 권리행사의 모습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보증금반환채권이 시효로 소멸한다고 보면, 임차인은 목적물반환의무를 그대로 부담하면서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반환채권만 상실하게 된다. 이는 보증금반환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임대인이 목적물에 대한 자신의 권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증금반환채무만을 면할 수 있게 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 나아가 이러한 소멸시효 진행의 예외는 어디까지나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목적물을 적법하게 점유하는 기간으로 한정되고, 임차인이 목적물을 점유하지 않거나 동시이행항변권을 상실하여 정당한 점유권원을 갖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까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임대차 종료 후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목적물을 점유하는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하여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그 채권에 관계되는 당사자 사이의 이익 균형에 반하지 않는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4조 제2항은 “임대차기간이 끝난 경우에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는 임대차관계가 존속되는 것으로 본다.”라고 정하고 있다(2008. 3. 21. 법률 제8923호로 개정되면서 표현이 바뀌었을 뿐 그 내용은 개정 전과 같다). 2001. 12. 29. 법률 제6542호로 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도 같은 내용의 규정을 두고 있다(제9조 제2항). 이는 임대차기간이 끝난 후에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는 임차인의 목적물에 대한 점유를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전과 마찬가지 정도로 강하게 보호함으로써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임대차기간이 끝난 후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임차인이 목적물을 점유하는 동안 위 규정에 따라 법정임대차관계가 유지되고 있는데도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은 그대로 시효가 진행하여 소멸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위 규정의 입법 취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부당하다.
위와 같은 소멸시효 제도의 존재 이유와 취지, 임대차기간이 끝난 후 보증금반환채권에 관계되는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량, 주택임대차보호법 제4조 제2항의 입법 취지 등을 종합하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대차에서 그 기간이 끝난 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목적물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
IV. 마치며
최근 전세사기로 인해 임차권등기를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차권등기만으로는 보증금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중단 효력이 인정되지 않으며, 특히 임대인이 임대사업자인 경우, 보증금 반환채권이 상사채권으로 평가되어 단기 소멸시효(5년)가 적용되어 보증금 반환채권이 소멸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효기간 만료 전에 보증금 반환채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임대인의 재산(예: 임차목적물)에 대해 가압류를 진행할 것을 권장드립니다. 이를 통해 채권 소멸을 방지하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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